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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요소를 배제하지 않고 구현해낸 청량감: Bonxie

ALBUM REVIEW

by 앙스트 2022. 2. 8.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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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 대상의 확장은 이미 익숙해진 아티스트의 대안을 찾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측면이 있다. 물론, 배경지식이 일천한 음반수집 초기에는 앨범 속지의 리뷰에 언급된 팀들을 무작정 찾아보는 방법 나는 '컬렉티브 소울(Collective Soul)이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와 페이스 노 모어(Faith No More)의 조합'이라는 글을 보고 곧장 두 팀의 앨범을 사 모았었다 이 효율적이지만, 소장앨범 수량이 일정 수준에 이르고 나면 각자의 취향에 맞는 아티스트와 비슷한 부류의 음악을 찾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기존 아티스트의 대안을 찾아 나서거나 '2의 ○○''포스트 ○○'같은 홍보문구에 반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 뮤지션이 너무 마음에 들어 그와 비슷한 음악을 더 알고 싶은 심리 때문이거나, 반대로 좋아했던 아티스트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거나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전자의 경우엔 보완재를, 후자의 경우에는 대체재를 찾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스토노웨이(Stornoway)의 신보 <Bonxie>를 처음 접했을 때 '디셈버리스츠(Decemberists)의 대체재'라는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쳤다.

 

사실, 스토노웨이와 디셈버리스츠를 같은 카테고리로 묶을 근거는 전혀 없다. 시기적으로 디셈버리스츠의 신보 <What A Terrible World, What A Beautiful World>에 손이 잘 가지 않던 차에 스토노웨이를 만났을 뿐이다. (디셈버리스츠의 신보를 귀 기울여 듣지 않았기에 그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기로 한다.) 디셈버리스츠의 프런트 맨 콜린 멜로이(Colin Meloy)의 목소리에서 애수의 정서를 살짝 걷어냈다고 해야 할까? 브라이언 브릭스(Brian Briggs)의 보컬은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 몇몇 곡은 더 쉰즈(The Shins)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스토노웨이는 스코틀랜드 해안도시 이름인데, 옥스포드(Oxford) 출신의 4인조인 이들이 이 이름을 선택한 이유가 흥미롭다. 다소 동떨어져 있는 외딴 연안지역 느낌이 나는 이름을 찾다가 BBC 일기예보에서 매일 언급되는 스토노웨이에 꽂힌 것. 기상예보 때마다 이름이 오르내리니 그보다 더 좋은 공짜 프로모션도 없겠다는 생각이 밴드 네이밍에 적잖은 몫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멤버들은 스토노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이 지역을 단 한번도 방문해본 적도 없다고 하니 그것 또한 재미난 일이다.

 

멤버들 브라이언 브릭스(보컬/기타/노랫말 담당), 존 윈(Jon Ouin; 키보드), 올리 스테드먼(Oli Steadman; 베이스)과 롭 스테드먼(Rob Steadman; 드럼) 형제 이 무슨 연유로 해안의 뉘앙스를 풍기는 이름에 매달렸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부둣가에 울려 퍼지는 뱃고동과 갈매기(?) 울음소리로 시작되는 첫 곡 'Between The Saltmarsh And The Sea'에서부터 그 집착이 감지된다. 잔잔한 프로그래밍 비트 위로 흐르는 청아한 기타 아르페지오와 그에 어울리는 브라이언 브릭스의 맑은 목소리는 청량함 그 자체다.

 

첫 번째 싱글로 커트된 'Get Low'는 단 한번만 들어도 타이틀 곡임을 알아챌 수 있는 넘버로, 희망과 긍정의 에너지로 충만하다. 끊임없이 변주되는 스트링과 키보드의 조합 속에 기타와 드럼, 베이스가 그 뒤를 떠받치는 전형적인 팝 라인이 제대로 구현된, 그야말로 말끔한 노래다. 담백하면서도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음식을 먹는 느낌이랄까? 디셈버리스츠의 콜린 멜로이와 더 쉰즈의 제임스 머서(James Mercer)가 문득문득 오버랩 되는 것도 이 곡에 남다른 애착이 가는 요인임을 부정하지 않겠다.

 

자동차 경적소리, 버스 문이 열리는 효과음에 이어 고릴라즈(Gorillaz)'On Melancholy Hill'과 유사한 도입부로 시작되는 'Man On Wire'는 스트링 섹션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앞선 두 곡과는 차별화된 매력을 뽐낸다. 신시사이저가 리드미컬한 부분까지 커버하는 고릴라즈의 노래와는 달리 이 곡은 스트링 파트가 마치 공중에 떠있거나 활공하는 기분을 선사한다. 디지털적인 터치가 여기저기 많이 배치되어 있음에도 그것이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배가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이 곡의 감상 포인트다.

 

'Man On Wire'가 디지털적 터치로 아날로그적 감성을 건드렸다면 바로 그 뒤를 잇는 'The Road You Didn't Take'는 전형적인 포크 뮤직으로 분위기를 잡아나간다. 극도로 행복한 순간을 포착해낸 노랫말이라지만, 제목 탓인지 아니면 곡조 때문인지 여태껏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해 사색해보게 되는 노래다. 싱그러운 새의 지저귐과 익살스러운 효과음으로 시작하는 'Lost Youth'는 블러(Blur)'Charmless Man'처럼 쿵짝쿵짝거리는 리듬 위로 실로폰 소리와 스트링이 은연중에 적잖은 존재감을 뽐낸다.

 

아련한 현악 느낌의 기타로 출발해서 아름다운 코러스로 바통을 이어주는 'Sing With Our Senses''Heart Of The Great Alone'에 이르고 보면, 스토노웨이는 정형화되지 않은 편곡 스타일로 자신들만의 색깔을 구축하는 영리함까지 갖춘 팀이라는 확신이 선다. 통통 튀는 베이스가 유독 도드라져 들리는 'When You're Feeling Gentle'은 여름 해변에서 듣는다면 제법 흥을 돋울 수 있는 곡이면서도 그 안에 녹아있는 유려한 멜로디는 주저 없이 엄지를 치켜세울 만큼 압권이다. 고요한 왈츠인 'Josephine'은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넘버로, 스텝을 밟아 춤추기보다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마지막으로, 호른과 베이스로 분위기를 잡아가는 'Love Song Of The Beta Male'은 낭만적인 요소가 충만한 가운데 맑은 기운까지 덧칠해내며 앨범의 대미를 장식한다. 여러 번 음반을 듣다 보니 생뚱맞게도 딱히 유사성을 발견할 수 없는 에어 서플라이(Air Supply)까지 연상됐는데, 이는 분명 청량감 탓이리라. 아날로그 장비로 아날로그 감성을 구현하고, 디지털 장비로 첨단의 사운드를 뽑아내는 것도 쉽지 않을진대, 디지털적 요소를 배제하지 않고서도 뒷맛을 남기지 않는 청량감을 선사하는 이들의 음악이 그저 대단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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