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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디가 함께하는 구연동화: My Head Is An Animal

ALBUM REVIEW

by 앙스트 2022. 2. 8.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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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는 재미있는 스토리를 차치하더라도 내겐 남다른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영화에서 무척 강렬한 인상을 남긴 'Space Oddity (Mitty Mix)' 덕분에 오래 묵혀뒀던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앨범들을 꺼내 들었고, 영화의 주요배경인 아이슬란드는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 리스트에 포함됐다. 그리고 OST에 수록된 'Dirty Paws'라는 멋진 노래를 통해 오브 몬스터즈 앤 멘(Of Monsters And Men, 이하 OMAM)을 알게 됐다.

 

영화를 매개로 접한 OMAM의 데뷔앨범 <My Head Is An Animal>은 그래서 처음엔 영화와 별개로 생각되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동화 같은 구석이 있는 노래들과 상상으로나 가능할 법한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영화 사이에는 접점이 있었다. 게다가 이들이 아이슬란드 다시 말하지만 영화의 주요배경이었다 출신이란 사실까지 더해지자 모든 노래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OST의 수록곡처럼 들렸다. 'OMAM의 음악과 함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류의 반응이 바로 그러한 방증이지 않을까 싶다.

 

해서 '새로운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라는 <롤링 스톤(Rolling Stone)>의 평가는 다른 시각에서 이 앨범을 감상할 방법을 내게 제시해줬다. 처음엔 '이렇게 착착 감기는 멜로디가 아케이드 파이어?'라는 의구심에 섣불리 동의하긴 어려웠지만, 포크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 다른 앨범은 몰라도 아케이드 파이어의 <The Suburbs>는 포크 감성이 짙다고 본다 과 어정쩡한(?) 스케일, 그리고 혼성그룹이라는 점이 닮아있긴 했다. 그러나 풍경이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선율과 남녀 보컬의 하모니는 분명 OMAM만의 특장점이라 할 만하다.

 

아이슬란드에 있는 유럽 최대의 폭포 데티포스(Dettifoss)를 염두에 두고 지은 제목이라 (혼자서만이라도) 믿고 싶은 첫 트랙 'Dirty Paws'부터 OMAM의 이미지즘 작법과 보컬 하모니는 빛을 발한다. 도입부 기타 아르페지오 사이로 미세한 먼지처럼 떠다니는 공기소리가 집중력을 불러일으키고, 난나 브린디스 힐마르스도티르(Nanna Bryndís Hilmarsdóttir)의 꿈꾸는 듯한 목소리와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그 뒤를 받쳐주는 라그나르 소르할손(Ragnar Þórhallsson)의 음색이 동화책에 삽화를 그려 넣듯 곡 전체를 채색한다.

 

난나와 라그나르가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형식의 'Little Talks'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넘버다. 트럼펫과 프렌치 호른이 빚어내는 관악 사운드 사이로 흐르는 보컬 선율이 단번에 두 귀를 사로잡지만, 뮤직비디오와 함께 감상한다면 한편의 잔혹동화 같은 느낌까지 받을 수 있다. 한편, 대부분의 악기가 수줍은 듯 전면에 선뜻 나서려고 하지 않는 가운데 난나의 하이톤 보컬이 돋보이는 'King And Lionheart', 그리고 난나가 선창을 하면 다른 멤버들이 중창으로 뒤를 받치는 'Mountain Sound'는 명랑만화처럼 경쾌하고 상쾌하다.

 

너무나 뻔한 멜로디지만 도저히 듣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감미로운 라그나르의 목소리가 빛을 발하는 'Your Bones'와 난나가 곡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가운데 멤버들의 추임새마저 유려하게 들리는 'From Finner'도 역사극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어떤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힘이 있다. 두 곡은 드럼으로 분위기 전환을 꾀한다는 점에서 닮아있지만, 전자가 관악세션으로 곡의 스케일을 확장하려 하는 데 반해 후자는 아코디언으로 잠시나마 곡에 아기자기한 맛을 더하려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전형적(?)인 포크 멜로디로 무장한 'Six Weeks'에서는 상대적으로 남성적인 기상이 엿보이고, 중반부의 휴지기가 주의를 환기시키는 'Love Love Love'에선 하이톤이 아닌 난나의 중저 음역대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청량감 넘치는 기타팝 내음과 둔중한 드럼 소리로 가득한 'Slow And Steady'와 어쿠스틱 기타 외의 악기편성을 극도로 자제한 'Sloom'을 통해 OMAM의 수수한 사운드를 맛볼 수 있고, 'Lakehouse'에선 고즈넉한 호숫가에 자리한 그림 같은 집에서 왁자지껄한 백야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 떠오른다.

 

관악기를 적재적소에 사용한 챔버팝과 부드러운 포크 뮤직으로 채워진 이 앨범에는 아이슬란드라는 나라 이름에서 연상되는 차가움보다는 따뜻함과 포근함이 더 부각돼있다. 그러나 겨울에 창문을 열어두고서 이불을 덮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따뜻함, 그리고 포근함은 적절한 차가움이 동반되어야 더 기분 좋게 느껴지는 법이다. 난 난나의 메마른 목소리가 열린 창문으로 스며드는 찬바람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동시에 흔치 않은 그녀의 음색 덕분에 OMAM <My Head Is An Animal>은 멜로디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구연동화 같은 앨범이 됐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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